단정한 글쓰기라는 수업에서 쓴 글
박준하
“와.. 여기도 문 닫았네” 문 앞에 붙어있는 흑백으로 인쇄된 A4 용지를 읽고 말했다. 이제 곧 한국으로 갈 날이 얼마남지 않아 아직 쓰지 못한 유로를 다 쓰려는 마음으로 큰 맘 먹고 왔는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하루가 침대 머릿맡에서 시작해 침대 발치쯤에서 끝나는 일상이 벌써 10일째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다음 주에는 호텔마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걸 단순히 여행에서 겪는 예상치 못한 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출국일은 3월 27일. 얼마 남지않은 출국일까지만 버텨줬으면 했다.
여행을 계획한 건 2019년도 3월 어느 주말.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 당시 대학원 졸업을 1년정도 앞두고 있었다. 이런 저런 김빠지는 이야기를 하다가 여행 얘기가 나왔다. 그 당시 여행은 우리 대화의 단골 주제였다. 여행을 가기에는 여유가 없던 우리는 여행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얻곤 했다. 그 날은 뭔가 달랐다.각자 나름대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서로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유진이라는 친구였다. 유진은 평소에 급발진을 많이 하는 친구로 많은 일들이 이 친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유진은 평소처럼 여행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스카이스캐너를 뒤져 1년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79만원짜리 아시아나 항공권을 찾았다. 항공권을 본 나는 천국행 티켓이 이렇게 싸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면서 급발진 하고 있는 유진에게 더 기름을 붓고 싶어졌다. 1년뒤에 무슨 일이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유진과 희승을 부추겼다.
“야 가자 비행기값이 79만원이면 안가면 손해야. 지금 안가면 언제 우리끼리 이렇게 가보겠냐?”
희승은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유진과 나의 강한 설득에 이내 가겠다고 결정했다. 총 여행기간은 1달. 남들은 대학교 여름방학때 간다는 늦은 유럽여행이 드디어 나에게 오는구나 생각했다. 일주일 정도 뒤에 연구실에서 달마다 받아 모아둔 푼돈으로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구매하고 나서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물론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힘이 들때마다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천장에 걸어둔 굴비 마냥 심심한 밥맛같은 인생에 기분좋은 짠 맛같은 항공권이였다.
졸업 논문 발표를 무사히 마친 2019년 12월,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에 대한 뉴스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1~2년에 한 번쯤 등장하는 해프닝 같은 이야기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몇 주 뒤, WHO가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결국 한국에도 바이러스가 상륙했다. 하지만 1년 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호텔과 교통편을 모두 예약해둔 상태였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정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게 지금의 결과다. 여행 중반부터는 국경을 닫는 국가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로마에서 출발할 예정이던 귀국 항공편마저 취소되었다. 우리는 서둘러 대체 항공편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점점 더 안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처음엔 ‘50인 이상 집합 금지’, 그다음은 ‘10인 이상’, 그리고 결국 ‘2인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되었고, 문을 닫아야 하는 업종도 문화시설에서 식당 등 생필품 업종까지 점차 확대되었다.
이런 우리에게도 몇가지 위안이 되는 건 있었다. 2~3일에 한 번씩 호텔 밖을 나와 텅 빈 도시를 거닐거나, 여행으로 왔다면 잠깐 지나쳤을 작은 공원에서 하루종일 있기도 했다. 푸른 잔디가 이불처럼 깔린 그곳은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웠다. 저녁 6시 이후엔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아, 타이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호텔 방에 틀어박혀 시시한 농담을 하거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유진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았고, 희승은 그림을 그렸다. 서로의 시간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모두가 자기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주간의 호텔 생활이 끝나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건 2주간의 자가 격리였다. 자가 격리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상과 비슷했다. 다른건 프랑크푸르트에서는 2 ~ 3일에 한번이라도 호텔 밖을 나올 수 있었지만 자가 격리중에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자가 격리가 끝나는 날 밤 12시에 집 밖을 나와 집 주변 공원을 걸으면서 여행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탄 순간,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는 말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서사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행은 바보같으면서도 훌륭한 서사였다. 이미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산산히 부숴버린 여행이였다.